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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대한민국 오페라의 시작, 초기 작품, 발전, 나의 의견

by BRAVO71 2024. 7. 2.

 

대한민국 오페라의 시작과 초기 작품 그리고 발전 모습을 이 글에 담아보겠습니다. 조선왕조 말기 서양의 문화가 대한민국에 유입되던 19세기 후반,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오페라가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었던 초기 오페라 작품과 오페라라는 장르가 발전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의견을 남겼습니다.

 

테너 이용훈의 노래하는 모습
테너 이용훈

 

 

목차

     

    대한민국 오페라의 시작

     

    오페라를 비롯한 서양음악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조선왕조가 쇠퇴하며 열강들의 이권 다툼으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심했던 19세기 후반부터였습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선교사들과 외교관들은 종교와 문화를 전파했는데, 이러한 조선왕조 말기의 상황은 대한민국 오페라의 발판이 되었고, 미래의 발전을 위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서양 문화의 유입을 가장 선도한 부류는 기독교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서양식 학교를 세우고 한국의 학생들에게 선진 문화를 교육했습니다. 이 수업의 일환 중 서양음악에 대한 수업이 있었고, 오페라에 대한 소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기관으로 1886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Mary F. Scranton이 세운 이화 여학교가 있습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이 되는 곳입니다. 이 학교는 양질의 서양 음악을 가르쳤고, 서양음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성악가나 악기 연주자로 키워내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20세기로 넘어가며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양 문학과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게 됩니다. 그중 음악과 극이 함께 하는 오페라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서양 음악 교육을 받은 한국의 음악가들과 작곡가들은 서양의 오페라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보였습니다.

     

    더 나아가 서양의 오페라와 대한민국 전통 음악적 요소들을 접목하는 시도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음악계에서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작곡가 윤이상(1917~1995)입니다. 그는 일본과 독일에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고, 오페라를 포함한 서양 클래식 음악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민속 전통 음악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이 두 문화를 조화롭게 섞어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만드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초기였기 때문에 이 시기에 있었던 오페라 공연은 교육기관이나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모임을 넘지 못하는 소규모 공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와 노력으로 오페라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 초석 위에서 대한민국의 오페라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많은 외국인이 그들의 문화를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서양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더욱 확장되었고, 조직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오페라 공연의 규모는 커졌고, 수준 또한 많이 올라가게 됩니다. 또한 오페라 녹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연구가 진행되었고, 한국 음악가들은 서양 음악을 배우기 위해 직접 유학을 떠나 본고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오페라와 음악계에 중요한 사건으로 1950년 국립극장이 설립된 것입니다. 오픈 초기에는 판소리, 무용 등 한국 전통 음악이 주를 이루었지만, 오페라가 그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고, 이는 한국 음악계에서 오페라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국립극장의 설립으로 한국의 오페라는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초기 작품

     

     

    대한민국에 오페라가 전해진 초기에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두 개의 오페라 공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46년 서울대학교 백주년 기념 홀에서 올려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공연은 대한민국 오페라 역사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이 공연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 공연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의 오페라는 현재의 위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오페라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었고,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우리의 음악이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서양 음악에 대한 관심을 심어 줌으로 새로운 음악을 공부해 보고자 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자유의 세상에서 열렸던 이 공연은 문화를 개방한다는 의미가 있었고, 더 넓은 세계의 음악과 문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의미가 깊은 오페라 공연 이후 한국 오페라는 오페라단 설립, 젊은 가수의 양성, 외국으로의 유학, 다양해진 오페라 공연 등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은 한국 오페라 시작을 알리고, 오페라의 대중화와 오페라의 지속적인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58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초연되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 역은 소프라노 김자경이, 남주인공인 알프레도 제르몽 역은 테너 박동진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역은 바리톤 최상학이 노래하였습니다.

     

    이 공연은 한국 오페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관객들에게 오페라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레퍼토리를 소개함으로써 한국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예술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Violetta Valéry의 비극적인 사랑과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던 불합리에 관객들은 공감하고 오페라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한국 오페라가 더 이상 소규모 수준이 아닌 국제적 기준으로 봤을 때 부족함 없는 성악가들의 재능을 보여 주었고, 무대와 장치들도 체계를 갖춘 제대로 된 오페라 공연이었습니다. 오페라가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쌓아 올린 역량을 보여주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을 본 한국의 음악가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성악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열정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페라의 발전과 나의 의견

     

     

    20세기 후반은 한국 오페라계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오페라단이 설립되었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민간 오페라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히 양질의 오페라들이 공연되었고, 오페라는 대중화되었으며, 많은 학생이 열의를 가지고 성악가의 공부를 하게 됩니다.

     

    전통 서양 오페라 공연도 많았지만,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 오페라들도 많이 생산되며, 여러 장르의 오페라가 무대 위에 올려졌습니다. 오페라가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작곡가와 음악가들은 한국적 요소를 서양 오페라 작품에 통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서양의 오페라 기법과 한국 음악의 요소가 조화롭게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 장르가 생깁니다. 이 오페라에는 한국 전통음악인 판소리와 국악이 등장하기도 하고, 한국 신화와 전설을 주제로 한 오페라들도 만들어졌습니다.

     

    1972년 초연된 오페라 심청’이 한국 오페라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청'의 성공으로 한국적 요소를 첨가한 오페라는 더욱 많이 생산되었고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오페라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오페라계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재정적인 것입니다. 오페라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무대 장치, 세트, 의상 그리고 가수들에게 지급되는 금액 등 상당한 금액이 들어갑니다. 좋은 공연을 꾸준히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 확보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해결이 있어야만 한국 오페라가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한국 성악가가 주역으로 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신의 목소리라고 극찬한 소프라노 조수미와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주연 가수로 활동한 신영옥 등 많은 가수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테너 이용훈이 부르는 Nessun Dorma

     

     

    202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 역을 맡은 테너 이용훈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그의 영웅적인 목소리와 음악성과 연기는 온몸을 전율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많은 성악가들이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서 또 유명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1946년 우리나라 최초 오페라 마술피리의 주춧돌 위에서 시작되었으며, 오페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가진 대한민국은 오페라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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