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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인생, 오페라, 음악 스타일

by BRAVO71 2024. 6. 24.

마리아 칼라스 사진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인생, 오페라, 음악 스타일에 대해 글을 써 보겠습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여성 오페라 가수라고 해도 좋을 마리아 칼라스의 굴곡 많았던 인생과 그녀의 드라마틱한 성량과 음악적 기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의 인생과 오페라 공연들에서 받은 감동을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인생

Maria Callas는 1923년 12월 2일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 이민자였던 그녀의 부모는 뉴욕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릴 때 다시 그리스로 돌아갔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리스에서 보내게 됩니다. 13세가 되던 해에 그리스 아테네 음악원에 입하여 오페라 가수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교육을 받게 됩니다. 불과 19세였던 어린 나이에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그녀의 경력은 1950년대에 들어서며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며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녀의 탁월한 성량과 소프라노가 맡을 수 있는 대부분의 역할이 가능한 성악적 테크닉(심지어 메조소프라노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준 높은 음악성으로 이탈리아의 스칼라 극장부터 유럽과 미국의 유명 오페라 하우스의 프리마돈나로 우뚝 서게 됩니다. 특히 그녀는 오페라 노르마, 라 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에서 그녀의 재능을 더 나타낼 수 있었고,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Maria Callas는 풍부한 성량과 음역의 범위만이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는 능력과 연기에 대한 집중도도 뛰어나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그녀의 오페라에 대한 음악적 해석과 연기는 깊은 문학적 소양에서 나오는 통찰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49년 그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던 이탈리아 사업가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1971년 끝나게 됩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사생활은 선박왕 오나시스와 연인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나시스가 고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던 제클린 케네디와 결혼을 하며 이들의 관계도 깨어지게 됩니다. Maria Callas는 오나시스와의 만남과 이별로 큰 상처를 받게 되고, 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체중이 급속히 줄어들며 성악적 테크닉도 예전과 같지 못하게 되었고, 그것은 공연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녀는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다 1977년 9월 16일 53세의 젊은 나이에 프랑스 파리에서 쓸쓸히 사망합니다.

오페라

Maria Callas의 오페라 레퍼토리는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런던의 코벤트 가든 등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서 수백 회의 오페라 공연을 했습니다. Maria Callas의 수많았던 공연 중 특히 유명했고, 큰 성공을 거둔 공연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42년 그녀는 아테네 음악원에서 Santuzza역으로 "Cavalleria Rusticana"에 출연하게 되는 데 이 무대가 그녀의 오페라 가수 데뷔 무대이고 19세의 나이였습니다. 1949년 베네치아의 La Fenice 극장에서 오페라 "I puritani"의 Elvira 역으로의 공연은 그녀가 이탈리아의 오페라계에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줍니다. 표현이 까다로운 벨 칸토 오페라에서 그녀는 음악적 재능과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 주며 자신의 장점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1950년 밀라노의 Teatro alla Scala에서 공연한 오페라 Norma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스칼라극장에서 주연으로 처음 서는 자리였고, 그녀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관객들의 뇌리에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킨 공연이었습니다. 특히 아리아 Casta Diva"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선보입니다. 저도 이 오페라 CD를 자주 듣는데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합니다. 1952년 스칼라 극장에서 Violetta로 출연한 "La Traviata"에서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공고히 하게 됩니다. 오페라 1막에서 보여주는 활력과 내면의 갈등부터 3막 죽기 직전의 쇠약한 모습과 절망을 그녀의 탁월한 성악적 기교와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진정으로 원했던 비올레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1953년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오페라 "Tosca"에서 보여준 그녀는 Tosca의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혼란과 죽음을 각오한 진정한 사랑 그리고 분노와 복수에 대한 감정을 그녀의 목소리와 연기로 완벽히 표현합니다. 이 공연으로 그녀는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영역으로 자신의 역할을 넓히게 됩니다. 1965년 7월 5일 런던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진 오페라 "Tosca"가 그녀의 마지막 무대였습니다. 이 공연에서 전성기와 비교해 성악적 민첩성 기교가 줄어들었고, 체력적으로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데 무리가 있었다는 비평은 있었지만 그녀의 작품과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집중력으로 무대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공연에서 더 이상의 오페라 출연은 무리라고 생각한 칼라스는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습니다.

음악 스타일과 감동 포인트

Maria Callas는 가수로서 가질 수 있는 자질의 최정점을 보여 준 사람입니다. 그녀는 무겁고 어두운 소리를 내는 저음역부터 가볍고 밝은 소리가 필요한 고음역까지 모두 낼 수 있는 기술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능력으로 그녀는 대형 오페라 극장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어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고, 수많은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뛰어난 기술은 프레이즈의 연결과 피아노부터 포르테까지 도달하는 다이내믹 그리고 완벽한 호흡의 조절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벨 칸토 오페라부터 베리스모 오페라의 역 모두를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 또한 눈부십니다. 자신이 맡는 역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심리적, 정서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페라 등장인물에 대해 꼼꼼하고 자세히 연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자기 것으로 완벽히 소화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부분입니다. 또한 그녀는 지휘자와 연출가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며 협력하여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기로도 유명합니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최고의 프리마돈나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5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음반과 동영상 자료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녀의 음반과 동영상을 듣고 있으면, 깊은 저음의 중압감과 맑고 투명한 고음 그리고 감정이 실린 다이내믹이 나를 전율하게 하며, 그녀의 연기는 마치 실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합니다. 오페라 등장인물을 생생히 살려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녀의 유산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후대에 전달이 될 것이며, 그녀가 주는 감동은 식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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