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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생애, 오페라 작품, 영향

by BRAVO71 2024. 6. 12.

 

자코모 푸치니는 베르디와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큰 족적을 남긴 작곡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의 음악교육과 생애 그리고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자코모 푸치니 사진
자코모 푸치니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생애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는 1858년 12월 22일 토스카나의 루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푸치니를 기억하기 위한 루카 오페라 페스티벌이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의 집안은 음악을 업으로 살아가는 음악적 유전자가 뿌리 깊게 내린 집안이었습니다. 학교의 음악 교사이자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가 푸치니 어린 시절에 사망하면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며, 먼 문제아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격려와 노력으로 푸치니는 음악을 다시 시작했고, 마침내 대대로 그의 집안이 맡아오던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푸치니 나이 17세 때 피사(우리가 잘 아는 피사의 사탑이 있는 곳)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오페라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됩니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의 자리를 버리고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의 나이 23세에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밀라노 음악원에서 그를 지도한 은사는 아밀카레 폰키엘리로 오페라'라 조콘다' (La Gioconda)를 작곡한 오페라 작곡가였습니다.

 

푸치니는 폰키엘리의 지도로 오페라 작곡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또한 우리에게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로 잘 알려진 '피에트로 마스카니' (Pietro Mascagni)와 함께 밀라노 음악원에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에게 마스카니는 푸치니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 성공은 마스카니가 먼저 거두게 됩니다. 오페라 작곡가의 등용문이었던 '손초뇨'(Sonzogno) 공모전에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가 1등을 하게 되며 세상에 먼저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푸치니의 첫 오페라 'Le Villi'로 '손초뇨'(Sonzogno) 공모전에 지원하지만 등단에는 실패합니다. 먼저 가는 게 꼭 많이 가는 건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그의 스승인 폰키엘리가 푸치니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해 푸치니의 첫 오페라 작품을 무대에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끌어냅니다.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인 '리코르디'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리코르디는 베르디, 로시니, 도니제티 등 최고의 음악가들과 계약을 맺어온 출판사입니다.

 

푸치니는 1893년 '마농 레스코'를 발표하면서 흥행을 끌어내는 작곡가가 되었고, 1896년 '라보엠'을 세상에 선보이며 명실상부한 최고 오페라 작곡가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 후 발표된 오페라 '토스카'와 '나비부인'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관객들은 천편일률적인 스토리 진행 등을 비판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게으른 작곡가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푸치니도 이러한 관객들의 비평을 받아들여 이후에 발표된 '서부의 아가씨'(La fanciulla del West) '일 트리티코'(Il trittico)에서는 기존 작품들과 다른 형식과 스토리를 채택합니다.

 

푸치니 오페라의 마지막 작품은 '투란도트'(Turandot)입니다. 극 중 남자주인공인 테너 '칼라프' 왕자가 부르는 아리아 'nessun dorma'의 선율은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라도 익숙한 멜로디일 것입니다. 이렇듯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오페라 '투란도트'가 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푸치니는 담배를 무척 많이 피웠는데 그 영향으로 인후암이 걸리게 되고, 1924년 11월 29일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투란도트'는 3막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이중창 앞, '류의 죽음까지만 작곡을 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가 오페라에서 감상할 수 있는 뒷부분은 그와 교류가 많았던 후배 '프랑코 알파노'가 푸치니의 스케치를 보고 작곡해서 오페라 '투란도트'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초연은 1926년 '라 스칼라'에서 명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공연되었는데,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만 연주하고, 관객들에게 "여기까지가 마에스트로 푸치니의 작품입니다."라는 멘트를 남기고 공연을 마쳤다고 합니다.

 

오페라 작품

 

 

 

푸치니는 총 12곡의 오페라를 작고 했는데 마지막 작품인 '투란도트'는 완성을 하지 못하고 사망했으므로, 본인 스스로 완성한 오페라는 11곡입니다. 그의 첫 작품인 '요정 빌리'(Le Villi)는 1884년 세상에 나옵니다. 비록 공모전에는 당선되지 못했지만,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고, 덕분에 '리코르디'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1895년 발표한 오페라 '마농 레스코'로 그는 '리코르디'출판사의 중심 작곡가로 올라설 수 있었고, 세상에 '푸치니'란 이름을 각인시키게 됩니다. 이 작품은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의 소설을 대본으로 했습니다. 푸치니는 이 오페라에서 '빌헬름 바그너'의 유도동기와 반음계 화성을 사용하는 실험을 감행합니다.

 

마농 레스코를 성공 시킨 다음 해인 1896년 푸치니는 프랑스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오페라 '라보엠'을 발표하며 베르디의 후계자라는 최고의 호평을 받습니다. 이 작품은 '앙리 뮈제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합니다. 남자 주인공인 시인 '로돌포'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과 뒤이어 여자 주인공 '미미'의 '내 이름은 미미' 그리고 함께하는 이중창의 연결은 푸치니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작곡가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1904년 푸치니는 일본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발표합니다. 일본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푸치니였지만 미국, 유럽의 제국주의적 성향과 충돌하는 아시아의 상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푸치니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오페라를 발표하겠다는 도전정신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1918년 푸치니는 '일 트리티코' (Il Trittico)라는 작품을 발표하는데 우리말로 '3부작'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전혀 다른 내용의 단막극 세 계를 합쳐 하나의 이름인 '일 트리티코'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각 단막극의 이름도 있는데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 세 개의 이름이 이것입니다. 세 작품의 배경, 등장인물 등이 모두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 트리티코'란 이름으로 세 개의 작품이 동시에 올려지는 일은 거의 없고, 하나의 작품들이 따로 공연되거나, 많아도 두 개 정도의 작품을 한 번에 올리는 경우는 있습니다.

 

전혀 다른 내용과 등장인물들을 하나의 오페라로 묶은 이유가 있습니다. 푸치니는 이탈리아의 문호 단테(Dante Aligheri)의 '신곡'을 오페라로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아이디어가 떠 오르지 않아 쓰지 못하다가 '일 트리티코'의 '외투'는 지옥 편을 '수녀 안젤리카'는 연옥 편, '잔니 스키키'는 천국 편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일 트리티코'의 세 작품 중 '잔니 스키키'는 푸치니 유일의 희극 오페라이고 여주인공인 부르는 아리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는 아름다운 선율로 대중들의 인기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다음 오페라가 그의 마지막 작품인 '투란도트'(Turandot)입니다. 고대 중국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로 멸망한 왕국의 왕자 '칼라프'와 대 제국의 공주 '투란도트'의 갈등과 사랑을 그린 오페라입니다. 이 오페라에서 푸치니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두 명의 소프라노를 등장시킵니다. 강한 성격과 높은 신분 그리고 선조의 불행한 죽음으로 인해 남성을 혐오하는 공주 '투란도트'와 청순가련하며 순종적인 칼라프의 시녀 '류'가 그 두 명입니다. '류'는 지고지순한 칼라프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칼라프를 죽이고 싶었던 '투란도트'는 그의 진실한 마음에 알게 돼 결국 자신의 사랑을 허락하게 됩니다.

 

푸치니의 영향력

 

 

푸치니의 오페라들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환상에 빠지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푸치니 활동 당시 곡들이 너무 가볍고 대중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로맨틱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당깁니다. 그는 많은 등장인물들과 여러 주제를 가지고 오페라를 작곡하면 자신의 심장이 시키는 진실되고 강렬한 감정을 음악으로 녹여내 결국은 관객들을 감동으로 이끌어갑니다.

 

그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와 '라보엠'에서 여주인공인 '마농'과 '미미'는 원작과는 다른 모습으로 오페라에 등장합니다. 원작에서의 다소 부정적인 내용들을 제거해 버리고 푸치니 자신이 그리는 이상형의 여성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의 가슴에서 그녀들의 모티브를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농 레스코가 2막에서 사랑하는 연인 '데 그리외'를 그리며 부르는 '이 부드러운 레이스 안에서'(in quelle trine morbide)와 라보엠 1막에서 '내 이름은 미미'(Mi chiamano Mimi)를 부르는 깜찍하고 귀여운 미미를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푸치니는 대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새로움을 지향하고 연구하고 도전하는 살아 있는 정신을 가진 작곡가라고 생각됩니다. 푸치니 전까지는 없었던 19세기 일본과 고대 중국의 전설 그리고 미국의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그 만의 독창적인 캐릭터와 음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1924년에 푸치니가 사망했으니 올해 2024년이 서거 10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의 아름다운 음악들은 우리들을 사로잡고, 극장으로 이끕니다. 앞으로 100년이 더 지나도 이러한 일은 계속 생길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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