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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안젤라 게오르규 토스카 / 게오르규 무대 난입

by BRAVO71 2024. 9. 9.

 

지난 글에서 안젤라 게오르규의 경력과 인생 그리고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내한 공연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본 공연에서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엉망이 된 공연 후기를 남겨보겠습니다.

 

목차

     

    오페라 보기 전

     

    그녀를 세상에 알린 1994년 런던 로얄 오페라하우스에서의 <라 트라비아타> 영상을 본 후로 그녀의 팬이 되었던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중 하나인 푸치니의 <토스카> 실황을 볼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설렘이었습니다. 우아한 몸짓과 상황에 맞는 움직임 그리고 고통과 환희를 그대로 보여주는 표정연기를 볼 수 있는, 어쩌면 한국에서는 마지막일 수도 있는 오페라 전막 공연이었기 때문이죠.

     

    사실 발성적 부분에 대해선 기대치를 조금 내려 놓았습니다. 게오르규의 매력 중 하나가 여린 외모에 비해 흉성이 많이 가미된 폭포처럼 쏟아지는 힘있는 성량인데, 그녀의 레퍼토리도 <토스카>, <마담 버터플라이>, <일 트로바토레>등 무겁고, 강렬한 소리를 필요로 하는 역들이 많았습니다. 59세라는 나이는 성악가에게, 특히 강한 소리의 오페라를 주 레파토리로 활동한 소프라노에겐 전성기가 꽤 지난 나이기 때문이죠. 

     

    게오르규의 토스카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건 처음이라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확실히 전성기는 지난 느낌이었습니다. 호흡 기초 위에서 흉성을 섞은 강렬한 표현들이 약했고, 특히 고음에서 시원하게 뻗어 나오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하지만 나이가 있는 소프라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듣기 싫고 불규칙한 바이브레이션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증거겠죠. 

     

    연기력은 '역시' 였습니다. 1994년의 젊었던 게오르규보다는 다소 풍성해진 몸매였지만, 그녀의 움직임엔 절도가 있었고, 표정연기과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도 이유가 느껴지는 연기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카바라도시역의 테너 김재형과 1막 2 중창에서 연인의 사랑에 대한 의심과 불안한 마음 그리고 신의를 확인하고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토스카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며, 테너를 리드하는 모습은 역시 대가구나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어요.

     

    잘 흘러가던 <토스카>는 3막 테너 카바라도시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E lucevan le stelle)이 끝나면서 나락으로 가기 시작해요. 이 역을 맡은 김재형은 한국의 대표적 성악가 중 한명으로 표현력이 뛰어난 테너라고 생각하는데,  카바라도시의 반항적이고, 강한 성격에 잘 맞았습니다. 3막의 아리아도 군더더기 없이 잘 불렀고, 너무도 유명한 이 아리아를 관객들은 한번 더 듣고자 앙코르와 박수를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답하고자 지휘자는 관객의 호응을 받아들여, 다시 아리아의 시작을 알리는 클라리넷이 연주되었고, 테너 김재형은 다시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게오르규가 무대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카바라도시의 독백인 이 부분에서 그녀는 나오면 안 되거든요. 그러더니 갑자기 손목을 가리키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뭐라고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라는 걸 단박에 직감했습니다.

     

    커튼콜 중 밖으로 나가는 게오르규
    커튼콜 중 야유를 받자 퇴장하는 게오르규

     

    지난 글에서 그녀의 인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녀와 전 남편인 로베르토 알라냐 둘 다 오페라계의 악동으로 유명했었죠. 현재 최고의 테너 중 한 명인 독인 출신 '요나스 카우프만'과의 <토스카> 공연에서도 그가 앙코르로 이 아리아를 한 번 더 부르자, 게오르규는 자신이 등장해야 할 부분에 한참 동안 나오지 않은 해프닝을 벌인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게오르규가 게오르규 하는구먼, 근데 직접 볼 줄이야!!'

     

    그녀의 문제제기에 대한 생각

     

     

    그녀의 어필은 두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It is not recital!"과  "Respect me!"였습니다. 좀 더 쉽게 풀어 보면 '이건 오페라지 독창회가 아닌데 왜 앙코르를 하는 거야!'와 '세계 최정상의 성악가는 나고 내가 주인공인데, 왜  내 아리아 Vissi d'arte, Vissi d'amore에서는 이런 큰 호응을 보내지 않는 거지!'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공연 중인 무대에 나타나 자기주장을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이건 절대 아닙니다. 이 걸 전제로하고 그녀의 문제제기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

     

    그녀의 첫 번째 문제제기인  '이건 오페라지 독창회가 아니잖아!'에는 수긍을 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오페라라는 장르가 만들어지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오페라 스토리(극)은 뒷전이고, 주인공들의 성악적 기교 자랑장으로 흘러가는 걸 막기위해 오스트리아 작곡가 '글루크'가 오페라 개혁이란 걸 했고,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이탈리아 명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아리아를 다시 부르는 건 고사하고, 고음에서 악보 이상으로 늘려 부르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중반 이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당시를 풍미하던 성악가가 오페라 공연의 중심이 되었고,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화려한 카덴자를 만들어 부른다거나, 고음에서 악보보다 훨씬 긴 박자를 노래하고, 유명한 아리아를 다시 부르는 소위 '앙코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작곡가 의도를 왜곡하게 되고, 극에 집중을 방해한다고 생각한 지휘자들에 의해 규제를 하게 되는데, 푸치니의 <투란도트> 초연을 지휘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시작으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거쳐 '리카르도 무티'에 의해 이런 분위기가 오페라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죠.

     

    20세기 중,후반에 전성기를 보낸 '안젤라 게오르규'는 성악가 중심이 아닌 작곡가의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는, 오페라 전체의 스토리에 중점을 둔 공연에 익숙해져 있겠죠. 그녀의 오페라에 대한 생각 또한 이게 맞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오페라 공연 중 유명 성악가의 아리아를 한번 더 듣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요청에 답하는 지휘자와 성악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아무리 확고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올려지는 공연 자체를 깨버리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두 번째 문제

     

    나를 존중해 달라.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지휘자, 연출가 이하 출연진들과 모든 스텝들은 그녀와 함께하는 공연에서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맞추었을 겁니다. 오페라를 올리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음악 연습이 어느정도 끝난 가수들이 최소 한 달 전에는 연출가와 함께 동선을 맞춥니다. 하지만 공연 며칠 전 한국에 온 게오르규와는 충분한 시간이 있을 수가 없겠죠. 물론 메일이나 동영상 회의 등으로 사전 조율을 했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부분을 거의 수용을 했을 것입니다. 이건 그녀를 완전히 존중하고 있다는 의미이죠.

     

    관객들 역시 그녀가 3막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기 전까진 큰 호응과 격려로 그녀의 무대에 반응했습니다. 전성기의 역량은 비록 아니였지만, 진지하게 배역에 빠져 노래와 연기를 하는 대가를 존중했기 때문이죠. 근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나를 존중해 달라"가 아니라 "푸치니를 존중해 달라."라고 말했다면 이해가 됐을 겁니다. 그건 첫 번째 문제 제기와 일맥상통한 내용이기 때문이죠.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제 생각은 '질투'에서 나온 행동이라 봅니다.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프리마 돈나인 데다 타이틀 롤인 토스카보다 카바라도시에게 더 큰 환호가 터져 나왔으니까요. E lucevan le stelle가 끝나면 바로 등장을 해야 하니,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테너 김재형에게 쏟아지는 박수 갈채와 환호가 못 마땅했고, 불 같은 성격을 가진 그녀는 그냥 무대로 나간 거죠. 이성을 잃은 겁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 생각이니,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거 이력들에 비추어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가정이라 생각해요.

     

    후기

     

    이런 난리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던 공연은 무사히(?)마쳤습니다. 문제가 됐던 부분의 다음은 그리 길진 않지만, 테너와 소프라노의 중요한 이중창과 아리아 그리고,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클라이맥스 장면인데, 전체적으로 큰 문제없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본 공연인지, 최종 리허설을 보러 온건지?', '게오르규는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여러 잡념들이 끼어들어 전혀 집중을 할 수 없더군요. 아니 어쩌면 집중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코미디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때문에 예전의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한테 화가 날 수도 있고, 자괴감이 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관객들도 감안하고 그곳에 갔지, 30~40대 게오르규를 듣기 위해 가진 않았을 거거든요. 안젤라 게오르규가 나이 듦으로 인해 더욱 익어가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 놓아주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음악이 훨씬 깊어질건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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